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로노 트리거 (문단 편집) == 탄생 == 크로노 트리거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호리이 유지]]와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의 [[토리야마 아키라]],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사카구치 히로노부]]가 뭉친 이른바 '''드림 프로젝트'''[* 서구권에서는 드림팀이라고 언급한다.]라는 캐치 프레이즈하에 개발된 작품이다. 당시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의 위상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고 라이벌 구도에 오른 상태였는데 그런 게임의 크리에이터들이 뭉쳐 RPG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대사건 그 자체였다. 다만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캐릭터 디자이너인 토리야마 아키라, 호리이 유지,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프로젝트 세팅 자체에는 영향을 끼치기는 했어도 실제 프로젝트에는 호리이 유지 정도를 제외하면 그렇게 깊이 참여하지는 않았다. 프로젝트 초기에 호텔에 모여 며칠 묵으며 회의를 하고 그 결과를 게임에 반영해 게임을 '기획'하기는 했지만, 게임 개발에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린 뒤 개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토리야마 아키라는 메인 캐릭터의 디자인을 맡았을 뿐 그 외의 캐릭터의 디자인은 [[V점프]]에서 담당했다. 호리이 유지는 스퀘어와 개발진과 회의를 거듭해서 시나리오의 원안을 집필하고 완성된 시나리오를 감수했다.[* 원안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게임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간략한 플롯 정도만 한 번 건네주고 끝인 대부분의 원안과는 달리 본작은 카토 마사토를 필두로 한 스퀘어의 개발진과 무려 1년 동안 매주마다 회의를 거듭해서 시나리오가 집필되었기 때문에 모두의 영향력이 온전히 반영되어 서로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즉 호리이 유지와 스퀘어 측의 업무 분담이 철저히 이루어져서 '원안 및 감수'라는 애매한 직책이 되었을 뿐, 호리이 유지 또한 실제로는 엄연히 시나리오 라이터 중 1명으로 참가한 것이다.(실제로 다른 게임들의 경우, 일반적인 원안과는 다른 이런 케이스에서는 그냥 시나리오 라이터라고 표기할 때가 많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원안 제공 - 이후 원안 제작자는 배제되고 게임 개발사가 시나리오를 전면 집필'하는데 크로노 트리거의 경우 이례적으로 '호리이 유지가 원안을 제작 - 이 원안을 구체적으로 어떤 시나리오로 만들 것인지 회의 - 회의 결과를 반영해 카토 마사토가 1주일 동안 시나리오를 집필 - 다음 회의에서 호리이 유지가 그동안 집필된 시나리오를 감수하며 수정점이나 다음 시나리오에 대해서 회의 - 새로운 원안이 필요할 경우에는 호리이 유지 또한 새로운 원안을 제작 - 이상의 과정을 1년 동안 반복'한다는 방식으로 집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물론 호리이 유지가 담당한 부분인 원안은 원안인지라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프롤로그의 경우 "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 중 주인공이 시간 이동을 하게 된다"라는 원안을 호리이가 제공하면 카토 마사토가 구체적으로 무슨 축제가 왜 열리고 있고 어쩌다가 시간 이동을 하게 되었는지 세부적인 플롯을 만들고 텍스트를 입혔다고 한다. 본작은 호리이 유지가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한 드래곤 퀘스트하고는 게임 내 대사의 스타일과 스토리텔링이 완전히 다른데 이는 실제 시나리오 집필을 카토 마사토를 필두로 한 스퀘어 개발진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본작의 시스템을 디자인하였다. 호리이 유지가 시나리오 집필에 참가했고 사카구치가 디자인한 게임 시스템은 본작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실제로 게임을 제작한 개발진은 [[스퀘어]]의 일반 개발진이었다. [[라이브 어 라이브]]의 개발을 마친 토키타 타카시가 후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토키타 타카시는 라이브 어 라이브를 제작하고 있을 때 동시기에 개발 중인 크로노 트리거에 이목이 집중되자 크로노 트리거를 뛰어넘어야 할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라이브 어 라이브를 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라이브 어 라이브 개발 종료 이후 자신이 크로노 트리거 팀에 배속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라이브 어 라이브의 흥행은 실패했으나 그래도 기분을 전환해서 그 분함을 열정으로 바꾸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크로노 트리거를 개발했다고 한다. 평소에 존경하고 있던 호리이 유지, 토리야마 아키라와 함께 일하게 된 것도 영광이었다고.] 크로노 트리거의 개발진들은 이후 [[크로노 크로스]], [[제노기어스]] 등의 개발에도 참가한다. 메인 시나리오 라이터인 카토 마사토는 처음에 어느 기획자가 시간여행물을 제안하자 반대했다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과거에서 플래그를 세우고 미래에서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할 뿐인 지루한 노가다 게임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고. 하지만 결국 프로젝트 참여 인원 다수의 지지를 얻은 시간여행물이 채택되었고, 어째서인지 이에 반대했던 카토 마사토가 메인 시나리오 라이터를 맡게 되었다. 본인도 어쩌다 얘기가 그렇게 됐는지 지금까지도 모르겠다고...[* 더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했던 카토 마사토가 지금은 크로노 트리거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후속작인 [[크로노 크로스]]는 물론이고 [[어나더 에덴]]에 와서까지도 계속 시간여행물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메인 시나리오 라이터로 발탁된 카토 마사토는 호리이 유지와 지속적으로 만남을 거듭해 시나리오를 최종적으로 완성한다. 그러나 게임의 컨셉과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 1993년 초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으나 정작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디렉터의 부재로 크로노 트리거의 개발은 큰 난항에 빠지게 된다. 이때 크로노 트리거의 디렉터는 일단 마츠이 아키히코였으나 마츠이 아키히코는 스퀘어에서 주로 배틀 디자이너를 담당하는 스태프이며 디렉터를 맡은 적은 없기에 크로노 트리거와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를 끌고 나갈 만한 역량은 없었고, 스퀘어 측에서도 마츠이 아키히코를 디렉터로 앉히긴 했지만 배틀 시스템만 담당하도록 해 사실상 배틀 디렉터였다고 한다. 개발진을 이끄는 사람이 없어 주먹구구식[* 카토 마사토의 2022년 인터뷰에 따르면, 게임 개발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좋게 말하면 [[근성]]이 넘치지만 나쁘게 말하면 미련한 방식으로 개발이 이루어져서 [[노가다]]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든 것이 바로 매 전투마다 각 캐릭터들이 매끄럽게 필드에 퍼지면서 진형이 펼쳐지는 것으로,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전투 시 캐릭터들이 분리되는 알고리즘을 제작해서 전투가 시작되면 자동으로 알고리즘에 따라 캐릭터들이 분리되도록 만들었겠지만 크로노 트리거는 그냥 전투 하나하나마다 수작업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형을 펼칠 것인지 개발진이 하나하나 지정을 했다고 한다. 이런 개발 방식이었기에 그야말로 노가다였다고. 심지어 이러한 뭔가 이상한 개발 환경을 아무도 개선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직원이 노가다를 하니 나도 힘을 내서 노가다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 황당하게도 서로 경쟁하면서 노가다를 하는 지옥이 펼쳐졌다고... 정상적인 개발 환경이라면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프로듀서나 디렉터가 이런 비효율적인 개발을 막고 개발 환경 개선과 효율적인 게임 개발 시스템의 제작을 우선시했겠지만 크로노 트리거는 토키타&키타세가 디렉터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총괄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카토 마사토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후속작 [[크로노 크로스]]에서 자신이 개발을 총괄하는 디렉터를 맡게 되자 이런 비효율적인 개발 환경을 크로노 크로스에서는 재현할 수 없다면서 효율적인 게임 개발 시스템의 제작을 최우선시해 일단 각종 게임 시스템의 자동화를 성립시킨 뒤 이를 이용해 게임을 개발해나갔다고 한다.]으로 개발이 지속된 탓에 답보 상태에 빠진 크로노 트리거를 구원하기 위해 사카구치 히로노부[* 카토 마사토의 2022년 인터뷰에 따르면, 사카구치가 파이널 판타지 6의 개발을 일단락한 이후 크로노 트리거의 개발 현황을 확인하러 왔는데 1년 동안 개발이 하나도 진행되지 않았다면서 크게 화를 내고 개발진을 재편했다고 한다.]는 [[라이브 어 라이브]]의 개발을 일단락한 토키타 타카시와 [[파이널 판타지 6]]의 디렉터였던 [[키타세 요시노리]]를 개발 중간에 투입해 그 둘을 메인 디렉터와 서브 디렉터로 삼는다. 크로노 트리거의 기획에 참가한 적도 없고 본래 개발진도 아니고 중간에 투입된 토키타가 졸지에 메인 디렉터[* 물론 메인 디렉터라고는 해도 키타세 요시노리, 마츠이 아키히코와 공동 디렉터였던 데다가 이미 게임의 뼈대가 완성된 이후에야 개발진에 합류한 것인 만큼 발언력은 적었다고 한다. 전투와 관련된 요소는 마츠이 아키히코의 담당이라 토키타와 키타세 둘은 주로 모험과 이벤트에 대한 부분을 관할(마츠이와 달리 두 사람이 서브 시나리오 라이터를 맡게 된 것도 같은 일환이다)했으며, 일반적인 디렉터처럼 자기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고자 개발진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그냥 게임이 무사히 완성되도록 개발진을 조율하고 이끌어 나가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조별 과제]]가 연상된다~~]가 되었을 정도로 당시 크로노 트리거의 개발 환경은 난장판이었다고 한다.[* 사가쿠치 히로노부에 의해 개발진의 재편이 이루어진 시기는 카토 마사토의 언급에 의하면 파이널 판타지 6의 개발(출시가 아니라 개발)이 일단락된 이후다. 추가적으로 크로노 트리거의 발매일은 1995년 3월인데 [[라이브 어 라이브]]의 발매일이 1994년 9월이다. 즉 토키타가 크로노 트리거의 개발에 관여한 기간은 별로 길지 않다. 게임 개발이 거의 마무리되면 디렉터의 업무량이 줄어들고 라이브 어 라이브는 본래 [[파이널 판타지 6]]보다 먼저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중간에 트러블이 발생해 개발이 지연되었다고 한 만큼 토키타가 크로노 트리거의 메인 디렉터가 된 건 1994년 9월보다는 이전이겠지만 그와 함께 크로노 트리거의 개발에 합류한 서브 디렉터 [[키타세 요시노리]] 또한 사카구치와 함께 담당하고 있던 파이널 판타지 6의 발매일이 1994년 4월이라는 걸 생각하면 두 사람이 크로노 트리거의 개발진에 합류한 시기는 아무리 빨리 잡더라도 1994년 초다. 즉 1993년에는 1년 내내 사실상 디렉터 없이 게임이 개발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토키타 타카시와 키타세 요시노리는 서브 시나리오 라이터로서 게임의 일부 플롯과 텍스트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도 맡았다. 그리고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들어진 게임은 전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걸작의 반열에 올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